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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치혜 Chihye Noh

노치혜(Chihye Noh)의 개인 아카이브. AI 시대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거버넌스, 기본소득, 데이터에 관한 글, 강연, 보고서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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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 기본소득당 여성위원회 위원장 2025.07–2026.09
  • nonce 엔지니어, 커뮤니티·사업개발 2025.02–2026.08
  • DSRV 사업기획 매니저, 미래금융연구소 연구원 2024.05–2024.12
  • 빗썸코리아 사업개발 매니저, 빗썸경제연구소 연구원 2022.04–2023.10
  • 『디지털자산 시대가 온다』 공동 저자

INTERVIEW · FACE DRAWING SEOUL

칼럼

기술의 도구성과 인간의 고유성에 대하여 (2026.07.09)

하이데거는 저서 『기술에 관한 물음』 (1954)에서 게슈텔(Gestell)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계 전체가 동원 가능한 자원으로만 드러나는 시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언제든 동원 가능하고, 주문 가능하고, 최적화 가능한 자원으로 나타난다.

부품·재고·예비물(Bestand, standing-reserve)이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게슈텔의 위험성으로 환경 파괴나 핵무기 같은 특정 결과를 상정하지 않는다.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다른 방식들을 모조리 가려버리는 것을 가장 큰 두려움으로 이야기한다.

이후 게슈텔의 위협에 대한 하이데거의 대처법은 3가지다. 게슈텔의 내부에서 이 모든 것이 ‘개시 방법’임을 깨닫거나, 예술을 통해 다른 ‘개시’를 표현하거나, 기술에 대한 통제의지를 내려놓는 초연함.

『기술에 관한 물음』과 하이데거의 후기 저서 『초연함』 (1959)에서 내놓는 처방은 "물음 그 자체"(Das Fragen ist die Frömmigkeit des Denkens, "물음은 사유의 경건함")에 대한 재인식화와 예술로의 전회였다.

시몽동은 저서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1958)에서 근대 문화는 기술적 대상을 '죽은 도구'로 오해해왔다고 진단한다. 기계를 인간 의도를 담는 수동적 그릇,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근대 문화가 기계를 수동적 그릇으로 본 것과 달리, 시몽동은 개체화(individuation) 개념을 바탕으로 존재를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기술적 대상 역시 설계도에 다 박혀 있는 것이 아닌,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발생하는 대상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구체화(concrétisation)라는 개념을 통해, 기술적 대상이 기술 자체의 내재적 경향성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계보를 따라 진화하며 ‘구체적 기계’로 나아간다고 진단한다.

시몽동은 기술을 세 층위(요소element → 개체individual → 앙상블ensemble)로 보며, 진정한 기계는 ‘비결정성 여백(marge d'indétermination)'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완전히 자동화된 닫힌 기계가 아닌, 인간 및 다른 기계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조율할 여지를 남긴 기계를 진정한 것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기계의 주인도 노예도 아닌 '기계들 사이의 지휘자/통역자(앙상블의 조율자)'로 설정된다.

하이데거가 기술의 본질을 게슈텔이라는 '개시의 양식'으로 규정한 것에 반하여, 시몽동은 기술적 대상 자체가 발생되고·진화하는 준-자율적 존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 계승자 스티글러는 이러한 진화하는 '기술적 대상'이 인간의 기억과 정신을 구성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스티글러는 하이데거의 기술관을 비판하며 저서 『기술과 시간』 (1994)에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조건이 기술 그 자체라고 설명한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동물들에게 능력을 다 나눠주다 인간에게 줄 기프트를 잊어버렸고, 그래서 인간은 결핍된 채로 태어났으며, 이 근원적 결핍을 메우려고 인간은 도구·불·기술에 의지하게 됐다는 신화로 기술과 인간을 비유한다.

따라서 스티글러에게 인간이란 기술과 함께, 기술을 통해서만 존재한 동물이다. 그는 에피필로제네시스(épiphylogenèse)라는 제3의 기억을 인간 정신의 지지대로 상정한다.

에피필로제네시스는 유전적 정보도 개체의 경험도 아닌 제3의 기억 '기록'을 통해 외재화된 제3차 파지(tertiary retention)다. 이 제3차 파지로 인해 인간의 기억과 정신 자체가 기술적 대상에 의존해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기술을 인간 바깥의 위협이 아닌 인간 정신의 지지대라고 바라본 것이다. 따라서 스티글러에게 기술이란 파르마콘(pharmakon)이다. 약이자 독.

문자는 기억을 보존하지만 동시에 기억력을 위축시키고, 디지털 미디어는 지식을 폭발시키지만 동시에 주의력을 파괴하고 정신을 '프롤레타리아화'한다. 기술이란 어떻게 쓰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년의 스티글러는 '독을 치료로 전환하는 기예와 정치'를 요구한다. 하이데거적 초연함에서 행위로 넘어와 사상에 대한 실천에 골몰한다. 그는 말년에 학교·실험 공동체·정치 운동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리고 스티글러의 제자, 허욱(육후이)이 등장한다.

그는 스티글러의 관점(기술은 인간의 구성적 조건이고, 파르마콘이며,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그것을 다르게 빚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답변을 내놓는다.

허욱은 앞서 서양 철학자들이 정의해온 계보를 전부 살펴보며 저서 『재귀성과 우연성』 (2019)을 통해 서구 사유는 이 기계론적 도구성을 어떻게 넘어서려고 했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도구성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기계론적 인과(mechanism)다. A가 B를 낳고 B가 C를 낳는 선형적 수단-목적 사슬. 부품은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에 종속된 수단일 뿐이고, 전체는 부분의 합이다.

허욱은 이러한 선형적 도구성에서 벗어나 기계를 유기체(organism)로 정의한다. 이는 그의 재귀성(recursivity) 개념으로 직결된다. 재귀성은 단순 반복(iteration)이 아니며, '자기 출력을 다시 자기 입력으로 되먹이며 매 회 자기를 다르게 재조직하는 나선 운동'이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 (1790)에서 유기체를 '자기 자신이 원인이자 결과인 존재(자기목적적, self-purposive)'라고 정의한 바 있다. 시계는 시계공이라는 외부 목적에 종속되지만, 나무는 자기가 자신을 만든다. 부분이 전체를 위해 있고 전체가 부분을 위해 있는 순환구조에 해당한다.

유기체적·재귀적 존재는 외부 목적에 종속된 수단이 아니다. 따라서 재귀성은 선형적 도구성을 원리적으로 넘어선다고 보여진다.

허욱은 칸트가 유기체에서 본 이 자기지시적 논리가, 셸링·헤겔의 독일 관념론(재귀적 운동의 일환인 변증법)을 거쳐, 20세기에 사이버네틱스로 기계 안에서 실현되었다고 해석한다.

노버트 위너의 피드백 루프, 2차 사이버네틱스의 자기조직화 시스템이 바로 '자기를 재귀적으로 조직하는 기계'라는 것. 시몽동의 '비결정성의 여백'을 지닌 기술적 대상과 같은 논지이다.

그러나 이 나선 구조의 자가발전, 자기 목적적이라 함은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흡수해 완결되는 닫힌 총체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헤겔의 절대정신(Absoluter Geist, 모든 우연, 모든 타자, 모든 외부를 변증법적으로 자기 안에 회수해 완성되는 체계)과도 같은 것이다.

외부가 없는 자기충족적 전체 개념이 이러한 재귀적 전개의 일환인데, 허욱은 이를 경계하며 다시 '우연성(contingency)'이라는 개념을 꺼내든다.

재귀성이 우연성 없이 단독으로 전개되면, 그것은 도구성의 극복이 아니라 도구성의 완성이 된다. 모든 것을 자기 목적에 봉사시키는 절대적 총체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연성이란 재귀적 총체성이 닫히는 것을 막는, 흡수되지 않는 외부이다.

허욱은 특이점(Singularity)과 가속주의적 기술 발전, AI가 자기를 재귀적으로 개선하며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수렴하는 그림을 자기지시적 재귀성이 외부(우연·타자)를 모두 흡수해 닫히는 사태로 진단한다.

허욱은 재귀 시스템은 우연성을 필요로 하며, 동시에 우연을 완전히 길들이면 도구성의 극한인 죽은 총체성이 된다고 이야기하며, 우연성을 재귀 안에 살아 있게 두기 위해 복수화된 기술 진보의 다양성,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를 제안한다.

허욱은 스티글러의 파르마콘적 실천을 받되, 그것을 문화마다 복수화한다. 서구의 도구, 재귀적이기만 한 시스템이 아닌 각 문화의 고유한 우주론과 도덕적 질서에 녹아들어 있는 '기술의 다원성'을 이야기한다.

재귀성을 단 하나의 보편 과정으로 두지 말고, 문화마다 다른 우주기술로 분기(bifurcation)시켜, 그것이 단일 재귀가 특이점으로 닫히는 걸 막는 정치적 장치를 만들자고 주장한 것이다.

기술 다양성은 곧 '재귀의 복수화'이고, 미래를 봉쇄하지 않으려는 우연성의 제도화인 셈이다. 이렇듯 기술의 도구성에 대한 논의 층위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로, 하이데거부터 이어진 기계론의 층위에서는 기계 모델을 선형 인과로 해석하며, 수단-목적을 1:1로 대응시킨다. 기계론에서 이야기하는 기술은 외부 목적의 노예로, 순수한 도구성을 띈다.

둘째로, 시몽동과 사이버네틱스가 보여준 유기체적 자기조직화의 층위에서, 기계 모델은 자기목적적 행위를 통해 도구성을 일견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허욱이 비판했듯 이는 모든 외부의 의도를 흡수해 총체화하는 '닫힌 재귀'로 이어질 위험이 존재한다.

셋째로, 환원 불가능한 외부를 상정함으로써 재귀적 도구화를 막아내는 것이다. 우연성을 통해 기계 모델은 도구성에서 빠져나가, 유기적이며 외부에 열린 재귀적 존재로 비로소 기능할 수 있게 된다.

기술철학의 도구성, 하이데거-시몽동-스티글러-허욱으로 이어지는 논의 과정에서 기계 모델의 도구성 탈피에 대한 모든 출구는 유기체적 기계 모델의 관점으로 해석된다. 우연성도, 코스모테크닉스도, 기술적 과정 내부에 외부를 상정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기계 모델과 인간의 개체성에 대한 접점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오늘날의 기계 모델은 자본집약적이며 거대한, 항거할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시몽동의 개체성에 대한 정의를 돌아보자.

초개체적인 것(le transindividuel). 시몽동에게 인간의 심리적·집단적 개체화는 기술적 대상을 매개로 한 초개체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혼자 개체화하는 게 아니라, 공유된 기술을 거쳐 집단으로 개체화한다는 것. LLM의 학습데이터 양상과도 닮아 있다.

스티글러의 제3차 파지는 LLM에서 은유에 머물지 않고,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형태로 물질화된다. 인류가 외재화한 정신(텍스트·이미지)이 학습 코퍼스(Corpus)로 응결되어, 새로운 기술적 개체화가 솟아나는 연합환경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다만 이 '제3차 파지'가 누구의 기억인지는 비워둘 수 없다. 코퍼스는 인간의 외재화된 기억이 가중치로 통계 압축된 것이지 기계 자신의 의식적 파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접점은 동일성(identity)이 아니라 구체적 사례화(instantiation)로 읽어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 정신의 외재화물이 기계 개체화의 직접적 토양이 된다는 점에서, 이 사례화는 충분히 물질적이다.

시몽동의 연합환경(milieu associé)은 본래 기계의 작동이 스스로 산출하고 그 작동을 다시 조건짓는 환경이었다. 코퍼스는 모델에 선행해 존재하므로 그 개념적 적합도가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관계의 양식' 층위에서 보면, 시몽동의 호혜적 공진화가 LLM에서는 코퍼스가 한쪽으로 사유화되며 공진화가 아닌 일방적 추출의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기술적 대상의 개체성과 인간의 개체성의 접점은 LLM 개발 과정에서 비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물질적인 것으로 드러낸다. 인간은 인간의 외재화된 정신 위에서 기계를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을 '개체화'라 부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주장이다, 시몽동의 개체화는 준안정적 장(場)의 긴장을 해소하며 개체가 발생하는 과정이지 엔지니어링 최적화가 아니기 때문에…)

LLM 학습이 코퍼스라는 준안정적 장에서 하나의 작동 개체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그것은 순수한 제작(fabrication)보다 개체화 쪽에 더 가까운 측면을 가진다.

문제는 자본이 이 접점을 비틀어낸다는 것이다. 시몽동은 비결정성의 여백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기계의 개방성이 만난다고 보았으나, LLM에서는 인간이 창출해내는 데이터, 원천데이터가 인클로저(enclosure)되어 코퍼스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비결정성의 여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여백을 조율할 자리, 시몽동이 인간에게 주려던 지휘자/통역자의 자리는 기계 앞에 앉은 사용자·노동자가 아니라, 컴퓨팅 파워(GPU 등)·가중치·머신러닝 방법론과 엔지니어 집단을 손에 쥔 거대 법인격의 층위에서만 분배되어 있다.

코퍼스는 인클로저되었고, 조율자의 자리는 사유화되었다. 이 상황에서 허욱의 닫힌 재귀는 추상이 아닌 이름이 붙은 기술적 현상으로 내려온다.

여기서 닫힌 재귀는 두 갈래로 나타난다. 하나는 정렬(alignment)에 의한 동질화다. RLHF·DPO 같은 선호학습은 출력의 품질·유용성·안전성을 끌어올리는 대신 출력의 다양성을 유의하게 떨어뜨린다(Kirk et al., 2024).

다만 이는 모델이 '제 선호를 되먹여서'가 아니라, 선호학습의 KL 정규화 항이 다수 의견을 과대대표하기 때문이다: 분포의 꼬리에 있던 외부(소수 관점)가 정렬 과정에서 깎여나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출력으로 자기를 학습시키는 재귀다(합성 데이터 자기증류, RLAIF). 그러나 이 재귀가 곧장 붕괴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모델 붕괴(model collapse)는 합성 데이터가 실데이터를 대체할 때 일어나는 조건부 현상이며, 실데이터와 합성 데이터를 누적하면 회피된다(Shumailov et al., 2024; Gerstgrasser et al., 2024).

즉 붕괴를 막는 것은 환원 불가능한 외부, 인간이 새로 생성하는 원천데이터의 지속적 유입이다. 우연성의 결핍이 붕괴를 부른다는 허욱의 추상은 여기서 '데이터 다양성의 지속적 공급'이라는 측정 가능한 조건으로 내려온다.

LLM이라는 재귀는 순수한 사유의 재귀가 아니라 물질적으로 구현된 재귀다. GPU와 전력, 라벨링 노동, 코퍼스 위에서만 돈다. 따라서 이 재귀가 닫히느냐 열리느냐는 그 물질적 조건이 외부를 계속 들여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지금의 소유 배치 자체는 우연적이다. 달리 될 수 있었고, 달리 될 수 있다. 우연성이 곧 거버넌스의 여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형이상학에서 곧장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 닫혀가는 물질적 재귀를 다시 열어둘 제도적 개입의 여지에 해당한다.

이에 대하여 경쟁이 곧 제도화된 우연성이라는 주장 혹은 여러 회사, 여러 모델이면 충분하다는 등의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경쟁 모델들이 겹치는 웹 코퍼스를 공유하고 수렴하는 정렬 기법으로 동질화된다면, '경쟁하는' 모델들 사이에서도 다양성은 무너진다. 시장 경쟁은 기술 다양성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우연성의 개념을 가져와 LLM이라는 물질의 세계로 번역하는 이 글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연적 존재들은 정치경제적이고 물질적이며 유기적이다.

기계 모델의 존재 양식은 컴퓨팅 파워·에너지·노동·데이터 소유의 형식과 분리되지 않기에, 우연성은 자원과 소유에 대한 거버넌스 논의를 촉발한다. 인간은 인간의 외재화된 정신 위에서 기계를 끌어내고 있으며, 그 정신이 누구의 것으로 귀속되고 그 위에 누가 조율자로 앉는가에 대한 질문은 존재론적 질문이 될 수 밖에 없다.


참고

Kirk et al. (2024), "Understanding the Effects of RLHF on LLM Generalisation and Diversity"

Shumailov et al. (2024), "AI models collapse when trained on recursively generated data" (Nature)

Gerstgrasser et al. (2024), "Is Model Collapse Inevitable? Breaking the Curse of Recursion by Accumulating Real and Synthetic Data".

노치혜 (2026). 기술의 도구성과 인간의 고유성에 대하여 (2026.07.09). 노치혜 Chihye Noh | THINKC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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