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동조합 파업부터 국민배당금을 둘러싼 논쟁까지, 결국은 ‘AI 시대 분배’의 문제입니다. 이 논쟁들은 '정부 대 기업' '기업 대 노동자' 라는 구도로 손쉽게 프레이밍되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되짚어보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은 이런 이분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한강의 기적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일으켜온 기업가들의 도전정신, 그 도전이 길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자원과 인프라를 댄 국가의 결단, 노동자들의 성실한 근로가 따로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어느 한쪽만의 공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같은 방향을 바라봤기에 가능했던 기적이었습니다.
반도체는 그 협업의 가장 빛나는 결실입니다. 1976년 정부가 ETRI를 세웠을 때, 우리에게는 '반도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습니다. 1980년대 정부의 반도체 공업 육성계획, '단군 이래 최대 R&D'라 불렸던 4M·16M·64M DRAM 공동개발. 그렇게 만들어낸 기술 위에 삼성과 SK가 세계를 향해 나아갔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1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다르지 않습니다. 2025년부터 2027년까지 반도체 분야 재정지원만 5조 원, 올해 한 해에만 1조 7천억 원이 투입됩니다. 산업은행을 통한 17조 원 규모의 저리대출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고, 용인·평택 클러스터의 송전선 지중화 1.8조 원과 용수관로 2.2조 원의 상당 부분을 정부와 공기업이 떠받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점 산업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발 맞추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과 국가에 대해 우리가 지금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기업을 '순전히 사적인 존재'로만 규정하면서, 거기에 들어간 공공의 자산과 공동체의 기여가 무관한 것처럼 선을 긋고, 정부 기조에 대한 찬반과 관계없이 기업을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으로 규정하거나, 혹은 그저 '세금만 내면 되었다'는 식으로 기업의 역할과 범위를 축소합니다. 기업이라는 우리 공동체의 가장 핵심적인 세포를, 공동체로부터 분리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기업가는 사회 공동의 문제를 푸는 명예로운 자리에서 내려와, 공적 자산과 인프라를 사적으로 편취하는 존재로 격하됩니다. 정부 역시 산업을 육성하고 산업 이익을 사회와 함께 나누는 주체에서, 그저 세금을 거두는 일수꾼으로 격하됩니다. 이런 관점 위에서 어떤 혁신 산업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왜 고 정주영 회장님과 이병철 회장님이 지금까지 존경받는 위인일까요? 그분들이 구국의 마음으로 산업을 일으킨 위대한 기업가였고, 정부와 노동자가 한 마음으로 그 방향성에 힘을 보탰으며, 그 기억을 우리 공동체가 함께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성취가 곧 나라의 성취였던 시절, 우리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우리 모두의 것이라 불렀습니다.
기업과 정부를 상호 적대적인 관계로 규정하는 관점에 반대하며, 그런 공동체를 원하지 않습니다. 정주영 회장님의 도전, 이병철 회장님의 결단을 우리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그분들이 자신의 사업을 진정으로 '나라의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한국 땅에서 비즈니스 하겠다는 창업가들을 몇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미국 법인을 설립할 수 있는데도, 내가 태어난 이 땅에서 전 세계를 놀라게할 무언가를 만들고, 나라에 돌려주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청년 창업가들을 알고 있습니다.
산업 도메인을 막론하고 우리 지역을, 우리 나라를, 우리 공동체를 '살리고'싶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면, 어떤 방식으로 규제를 해결하여 이 사람들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더 있을까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이 문제 해결 과정에 동참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AI가 불러온 복합 위기 시대, 분배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어떤 한 조직이나 구성원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기업이 마땅히 명예로울 수 있고, 정부가 정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특히나 기술 독점이 보편화되고, 우리가 지금까지 취해온 공급과 분배의 방정식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와 샘 알트먼같은 기업가들이 앞장서 '분배'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공동체가 찾아야할 다음 먹거리는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이 얼마만큼의 효익을 나눠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현 시점 가장 중대한 정치적 문제입니다.
하여,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복합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아주십시오. 기업이 기업다울 수 있고, 정부가 정부다울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주십시오.
현 시점에서 기업과 정부 사이에 선을 긋고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주장하는 방식은, 불가능하거니와 지속가능하지도 않으며, 우리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전략 산업 육성이 보편화된, 산업 성장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뀐 기술 진보의 시대입니다. 기업 대 정부, 기업 대 노동자같은 불필요한 프레이밍을 이제는 그만해야합니다.
그러니 반도체가 아닌 제조업 전반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국가 산업 전략 육성에 대한 공공 투자와 그에 따른 환수 조치 방안, 새로운 분배 계약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주십시오.
AI·로보틱스 전환으로 변화할 일자리에 대하여, 노동자 대표와 기업과 정부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논의할 수 있도록 의견을 보태주십시오.
핵심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인센티브에 대하여,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는 국가 인재들을 어떻게 이 땅에 머무르게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주십시오. 마땅히 명예로운 기업가들을 어떻게 더 많이 길러낼 수 있을지 함께 모색하고,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은지 살펴봐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바라는 우리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이 발전해온 역사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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