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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치혜 Chihye Noh

노치혜(Chihye Noh)의 개인 아카이브. AI 시대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거버넌스, 기본소득, 데이터에 관한 글, 강연, 보고서를 기록합니다.

THINKCRAFT 대표

노치혜 프로필 사진
FIG. CN
이력
  • 기본소득당 여성위원회 위원장 2025.07–2026.09
  • nonce 엔지니어, 커뮤니티·사업개발 2025.02–2026.08
  • DSRV 사업기획 매니저, 미래금융연구소 연구원 2024.05–2024.12
  • 빗썸코리아 사업개발 매니저, 빗썸경제연구소 연구원 2022.04–2023.10
  • 『디지털자산 시대가 온다』 공동 저자

INTERVIEW · FACE DRAWING SEOUL

보고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비대칭을 추동하는 AI | AI 시대 정치경제 브리핑 (2026.09.21)

우리가 알아온 세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축 위에 세워진 세계가 AI로 인해 격변하고 있는 현재, 자본주의는 자본집약적 기술 산업으로 팽창에 가까워지고 민주주의는 실질적 결정권과 자원의 양극화로 수축되며 시민들에게 '명목상의 평등'만을 부여하고 있다.

시대적 필요로 인해 여러 정동과 새로운 세계관들이 부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현실적이며 검토 가능한 수준의 기획을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의 상황과 맥락에서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으며 긍정적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획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합의(settlement)를 위한 구체적 설계안을 제시하고자 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1. 주된 분석 프레임워크

고유한 관점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 중 특정 변수를 골라 가중치를 두고(이것을 기준이라고 부른다), 해당 변수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것에서부터 만들어진다.

따라서 모든 주장은 이렇게 분석한다. 첫째, 하나의 주장을 그 주장을 떠받치는 전제들로 분해한다. "AI가 감당할 수 없는 양극화를 만든다"는 문장은 사실 여러 개의 전제가 겹쳐진 결과물이고, 그중 어떤 것은 데이터로 확인되지만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이 단계의 목적은 사실로 존재하는 변수와 변수에 대한 제안자의 해석 범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둘째, 전제마다 두 개의 가중치를 매긴다. 하나는 담론 가중치로, 사회적 논의가 그 전제를 얼마나 사실로 취급하는지를 나타낸다. 다른 하나는 증거 가중치로, 실제 데이터가 그 전제를 얼마나 지지하는지를 나타낸다. 두 값의 격차가 큰 곳이 해당 주장, 내러티브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 된다.

셋째, 결과를 세 개로 분류한다. 이미 시장과 담론에 반영되어 있는 Probable, 구조적으로 배제할 수 없어서 대비가 필요한 Possible, 발생하면 모든 가격과 전제가 리셋되는 Plausible. 이 세 분류를 통해 시나리오의 타당성을 검토한다.

앞으로 서술할 글에 등장하는 가중치 수치는 문헌과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적 판단이며, 통계적으로 계산된 확률이 아니다. 같은 변수여도 해석은 다를 수 있으며, 그 차이 자체가 논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 AI로 인한 변화

2.1 자본주의의 팽창

세계의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약 4분의 3을 보유하고 있고, 하위 절반이 가진 몫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소득으로 보면 상위 10퍼센트가 53퍼센트, 중간 40퍼센트가 38퍼센트, 하위 절반이 8퍼센트를 가져간다.

여기서 한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불평등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820년 이후 상위 10퍼센트는 줄곧 세계 소득의 절반 이상을 가져갔고, 하위 절반은 한 번도 15퍼센트를 넘은 적이 없다. 불평등은 최근의 사고가 아니라 근대 경제의 상수에 가깝다. (어느 나라든 경제발전 과정은 본질적으로 '불균형 발전'을 거친다. 『좋은 불평등』(2022))

실제로 자본이 팽창하고 있는 영역은 최상단이다. 초고액 자산가 층이 보유한 세계 부의 비중은 1995년 3.7퍼센트에서 2025년 6.1퍼센트로 꾸준히 올라갔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만 6천 명 남짓이 인류 절반이 가진 자산의 세 배를 보유한다.

출처: World Inequality Lab, World Inequality Report 2026

2.2 민주주의의 수축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팽창하면서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설명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데이터는 정반대를 가리킨다. 평균적인 세계 시민이 경험하는 민주주의 수준은 1978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제3의 민주화 물결이 쌓아 올린 성과가 거의 소멸한 것이다.

2025년 말 기준으로 독재 국가가 92개, 민주국가가 87개다. 세계 인구의 74퍼센트가 독재 체제 아래에 살고 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사람은 7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은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 지위를 잃었고, 새롭게 독재화가 진행되는 열 개 나라 중 여섯 곳이 유럽과 북미다.

후퇴의 방식도 과거와 다르다. 군인이 탱크를 몰고 나오는 대신, 선거로 뽑힌 지도자가 내부에서 제도를 약화시킨다. 선거는 형식적으로 유지되지만 표현의 자유와 견제 장치, 법치가 먼저 무너진다.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영역이 표현의 자유라는 점은 이 방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출처: V-Dem Institute, Democracy Report 2026

2.3 문제는 동시 팽창이 아니라 비대칭이다

두 데이터를 겹쳐 놓으면 문제의 성격이 달라진다. 자본 쪽은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와 모델이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 덕분에 가속하고 있고, 민주주의 쪽은 정당성과 숙의 능력이 수축하고 있다. 두 체제가 함께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한쪽은 빨라지고 한쪽은 느려지는 속도 차이가 문제의 본질이다.

폴라니는 시장의 팽창이 반드시 사회의 자기 보호 반운동을 불러온다고 보았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분기점은 반운동이 일어나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민주적 형태를 띠는지 권위주의적 형태를 띠는지였다. 1930년대에 어떤 나라는 뉴딜로 갔고 어떤 나라는 파시즘으로 갔다. 지금의 데이터는 반운동이 후자 쪽으로 흡수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3. 민주주의 수축은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민주주의가 이미 수축하고 있다면, '그 흐름을 따라가면 안 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이 질문에는 숨은 전제가 하나 있다. 추세가 그러하면 그 방향이 옳다는 전제다. 추세는 사실이지만, 그 방향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수축을 지지하는 논거는 주로 다음과 같다. 유권자는 정책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며 아는 사람에게 결정권을 주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 있고, 선거 주기에 묶이지 않는 체제가 장기 계획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다. AI 시대에는 새로운 논거가 추가된다. 민주주의를 정당화한 근거 중 하나가 누구도 사회 전체의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AI가 그 정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한다면 분산된 의사결정의 필요가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가장 강한 반론은 도덕이 아니라 구조적 결함 자체에 있다. 권위주의 체제의 성과는 평균이 낮다기보다는 편차가 크다. 싱가포르와 중국의 성공 사례 뒤에는 같은 체제 유형의 붕괴 사례들이 존재했다. 성공한 사례만 보는 것은 생존자 편향이고, '선한 독재자'란 제도가 아니라 복권에 가깝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앞선 방법론의 언어로 옮기면, 권위주의는 한 지도자의 능력과 선의라는 단일 전제에 모든 가중치를 거는 체제, 즉 제도화된 도박이다.

성과 면에서도 민주주의가 반드시 불리하지 않다. 민주화 이후 장기적으로 1인당 소득이 유의하게 높아진다는 추정이 있고, 언론과 선거가 작동하는 나라에서 대기근이 발생한 사례가 없다는 센의 관찰도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핵심 기능은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결정을 되돌리는 것'이다. 정권 교체라는 비폭력적 오류 수정 장치가 없으면, 잘못된 전제가 무너질 때 가격이 아니라 체제가 리셋되며, 그에 대한 사회적 충격을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수축 국면을 맞아 우리는 "이 추세를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이분법이 아니라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통화정책이나 기술 표준처럼 이미 합의된 영역은 단기 정치에서 떼어내는 편이 낫고, 필요하면 민주적 절차로 되돌릴 수 있다. 반면 선거의 공정성과 표현의 자유, 사법 독립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확장할 수단 자체가 사라진다. 되돌릴 수 있는 선택과 되돌릴 수 없는 선택에 같은 가중치를 부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4. 대안의 필요성

현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통째로 대체하면서 검증까지 된 대안은 없다. 20세기에 이를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위에서 구성된 현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혁명과 같은 체제의 대안이 아니더라도, 대안은 존재한다. 두 체제는 단일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부품의 묶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시장을 통한 자원 배분, 임금노동,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축적 압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한 선출, 권리와 견제, 다수결, 그리고 책임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대안은 이 부품 중 어느 것을 갈아끼울 수 있느냐의 관점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부품별로 검증 수준을 따져보면 분명한 패턴이 나타난다. 독일의 공동결정제처럼 수십 년간 국가 단위로 작동한 제도는 검증 수준이 높지만 분배를 극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노동자 협동조합과 공유재 기반 생산은 기업과 특정 자원 단위에서는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경제 전체 단위로 확장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AI 계획경제나 급진적 시장처럼 효과가 급진적일수록 검증 수준은 낮아진다.

대안 검증 수준 해결하려는 문제 기존 체제 안에서 가능한가
공동결정제(독일) 높음 부의 집중(효과는 온건) 가능
노동자 협동조합 중간 부의 집중 가능
공유재 기반 생산 중간 부의 집중 가능
추첨제 시민의회 중간 정당성의 병목 가능
디지털 숙의 중간 정당성의 병목 가능
국가자본주의 높음(단일 사례) 성장과 집행력 불가(민주주의를 포기)
이차투표, 액체민주주의 낮음 정당성의 병목 부분적으로 가능
AI 계획경제 매우 낮음 부의 집중과 효율 불가

검증 수준이 높은 대안일수록 이행이 쉽고 효과는 온건하다. 검증 자체가 기존 체제 안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I 시대 자본주의 팽창과 민주주의 축소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새로운 체제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라기보단, 부품별로 가중치를 두고 교체 순서를 설계하는 일에 가까워진다. 전후 복지국가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새로운 합의였지 체제의 교체가 아니었다. 이 글이 목표로 삼는 설계안도 같은 성격이다.

다만 이 결론에도 약점이 있다. 부품 교체는 수십 년이 걸리는데 AI가 만드는 집중은 몇 년 단위로 진행된다. '개혁 부품'이 기존 체제의 정당성 보강 도구로 흡수될 위험이 존재한다.

5. AI가 흔드는 것

5.1 경제: 생산과 수요 개념의 전환

AI는 생산성을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노동 수요를 줄인다. 노동 수요가 줄면 노동소득이 줄고, 노동소득이 줄면 구매력이 줄어든다. 그런데 생산된 가치는 팔려야 비로소 자본이 된다. 생산 능력만 커지고 살 사람이 줄어들면 순환 자체가 막힌다. 마르크스가 실현 위기라 부르고 케인스가 유효수요 문제라 부른 것의 AI 버전이다.

자본주의는 과거에도 이 문제를 여러 번 우회했다. 신용을 늘려 미래의 임금을 미리 쓰게 했고, 국가 지출로 수요를 보강했고, 수출로 다른 나라 노동자의 구매력을 빌려 왔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런데 이 우회로들에는 공통된 담보가 있었다. 인간의 노동이 소득을 만든다는 전제다. AI는 이 전제를 취약하게 만든다.

물론 붕괴가 필연은 아니다. 2005년 씨티그룹의 내부 보고서는 이미 미국 경제를 부유층의 소비가 이끄는 구조로 규정했다. 소수의 구매력만으로도 상당 기간 순환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AI 에이전트가 컴퓨팅 자원을 사고 기업이 기업에 판매하는 거래가 커지면, 순환의 상당 부분이 인간 소비자를 거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인 소비자이자 유권자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더 협소해지며, 전력과 반도체라는 물리적 제약을 손에 쥔 쪽은 지대를 받게 된다. 이전 세대에 '디지털 지대'를 수취해 온 클라우드 기업이 '컴퓨트 지대'를 수취하기 위해 데이터센터 건설에 나서고 있다.

5.2 AI로 촉발된 정치적 문제의 세 층위

AI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말은 대개 딥페이크와 여론 조작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얕은 층위에 해당한다고 본다. 2024년의 여러 선거에 대한 사후 분석에서 AI 허위정보가 결과를 바꾸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며, 실질적인 피해는 특정 메시지의 설득력보다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일반화 쪽에 가깝다.

두 번째 층위는 통치 비용이다. 과거의 권위주의는 감시를 위해 많은 사람을 필요로 했고, 그 사람들 자체가 체제 내부의 잠재적 균열로 존재했다. AI 감시는 억압에 드는 비용과 인원을 동시에 줄인다. 행정 자동화도 같은 효과를 낸다. 관료제는 비효율적이지만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집합으로도 기능했던 측면이 있었다. 자동화된 행정에는 양심적 거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가장 깊은 세 번째 층위, 현 시점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층위는 협상력이다. 민주주의는 선의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다수의 지지기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확장되었다. 파업이 경제를 멈출 수 있었기에 노동자에게 협상력이 존재할 수 있었고, 대중 동원 전쟁이 병력을 필요로 했기에 보통선거권이 확대되었으며, 국가 재정이 시민의 소득에 의존했기에 대표 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원칙이 성립됐다.

석유 수입으로 재정을 채우는 나라는 시민에게 세금을 걷을 필요가 없고, 따라서 책임질 필요도 줄어든다. 정치학에서 '자원의 저주'라 부르는 구조다. AI가 생산과 세수를 대신하게 되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시민이 가진 협상 카드가 사라지는 것이다.

5.3 선호의 설계

정치학자 스티븐 룩스는 권력을 세 층위로 설명한다. 투표에서 이기는 힘, '무엇이' 투표에 오를지 정하는 힘,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애초에 무엇을 원하게 될지'를 형성시키는 힘이다. 추천 알고리즘은 정확히 세 번째 층위에서 작동한다.

민주주의가 분배를 청구하는 통로로만 남는 것보다 이것이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시민이 청구하는 내용 자체가 플랫폼이 설계한 욕망을 반영한다면, 형식적으로는 민주적 선택이지만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시민은 방향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한 방향을 자기 방향으로 착각하게 된다.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과 선택, 취향이 특정 카테고리로 묶여 분류되고, 어떠한 것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지 않으면 알고리즘 추천 탭의 수많은 정보 속에서 세상을 이끄는 거대 담론, 소수의 권력자가 지정해둔 세계관 속으로 힘없이 빨려 들어가게 된다.

다만 빅테크의 세계관이 하나라고 보는 것은 부정확하다. 규제 없이 최대한 빠르게 가자는 가속주의, 위험 통제를 앞세우는 안전 중심 노선, 국가를 최소화하려는 기술 자유지상주의, 그리고 AI를 안보 자원으로 보는 기술 민족주의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단일 세계관이 아니라, 세계관을 이끄는 선택지를 극소수가 정한다는 것이다.

5.4 민주주의의 가치 이동

생산이 자동화될수록 민주주의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동한다. 첫째, 노동으로 몫을 주장할 수 없게 된 다수에게 남는 유일한 청구 수단(분배 청구권)이 된다. 근거가 "내가 일했으니까"에서 "내가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니까"로 바뀌는 것이다.

둘째, 경제적 기능을 갖게 된다. 앞서 본 실현 문제가 사실이라면 구매력을 만들어내는 분배는 자본주의의 생존 조건이고, 그 분배는 시장이 알아서 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생산 수단을 소수 인원이 점유하게 되기 때문에, 비소유자 다수의 정치적 힘이 있어야만 한다. 민주주의가 도덕적 가치에서 시스템 유지 장치로 격상되는 지점이다.

셋째, 목적을 정하는 권한이 된다. 생산이 자동화될수록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영역은 기계가 풀어야 할 문제가 된다. '무엇을 위해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만이 인간에게 남는다. 그 판단권을 극소수의 모델 소유자에게 둘지, 시민에게 둘지가 지금 격돌의 핵심적인 쟁점이자 전선이다.

넷째, 오류를 되돌리는 기능의 가치가 되려 증대된다. 결정의 속도와 규모가 커질수록 잘못된 결정의 파급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기능만 남으면 로마형 비극이 된다. 곡물을 배급받았지만 결정권은 없었던 후기 로마의 평민처럼, 배급은 받되 방향은 정하지 못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고작 분배 청구권에만 머무르게 된 민주주의라면, 진실로 민주주의가 지향하고자 했던 평등의 세계관과는 단 한 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하는 결말에 이르게 될 것이다.

6. 민주주의는 왜 '분배 청구권'으로 축소될까

앞 장의 마지막 문단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경고이므로 따로 다룰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분배를 청구하는 통로로만 남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이며, 어떤 경로로 그렇게 되고, 왜 그것이 개선이 아니라 '전락'인지를 차례로 밝힌다.

6.1 산업 시대, '노동'에 묶여 있던 네 개의 기능

민주주의가 실제로 수행해 온 일은 하나가 아니라 넷이었다. 사회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눌지 정하는 분배 기능, 사회가 어디로 갈지 정하는 방향 설정 기능, 권력이 잘못할 때 이를 감시하고 교체하는 견제 기능, 그리고 사람들이 정치적 주체로 조직되고 스스로의 이해를 자각하는 형성 기능이다.

산업 시대에 이 네 기능은 노동이라는 하나의 고리에 함께 매달려 있었다. 노동자는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네 가지 지분을 동시에 가졌다. 파업으로 생산을 멈출 수 있다는 경제적 협상력, 작업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조직 기반, 생산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숙련, 그리고 국가 재정의 원천이라는 지위다. 이 네 가지가 각각 위의 네 기능을 뒷받침해왔다.

노동이 제공하던 지분 정치적 기능 작동 방식
생산을 멈출 수 있는 힘 분배 임금 교섭, 파업권, 노동법
작업장에 모인다는 조건 형성 노동조합, 대중정당, 계급 정체성
생산 현장의 정보와 숙련 방향 설정 산업 정책과 기술 도입에 대한 현장의 발언권
국가 재정의 원천 견제 대표 없이 과세 없다, 예산 통제

여기서 핵심은 분배가 다른 세 기능과 분리되어 주어진 적이 없다는 점이다. 임금 인상은 협상의 결과였고, 협상은 조직의 결과였으며, 조직은 현장의 정보와 결합해 산업의 방향에까지 발언권을 만들었다. 정당한 임금을 받는 일과 사회의, 기업의 방향성을 정하는 일은 함께 일어났다.

6.2 AI는 인간의 지분을 줄인다

생산에서 '사람'이 빠지면 네 가지 기능에 대한 지분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멈출 생산이 없으면 협상력이 없어지고, 모일 작업장이 없으면 조직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현장의 정보가 모델 안으로 들어가면 방향에 대한 발언의 근거가 취약해지고, 재정이 노동소득이 아니라 지대에서 나오면 납세자로서의 지위도 약해진다.

그때 남는 것은 하나뿐이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니 몫을 달라는 청구다. 이 청구는 정당하다. 그러나 청구만이 시민들에게 남아 있을 때, 관계의 성격은 비대칭적으로 바뀐다. 협상은 서로 무언가를 쥔 두 힘 사이의 관계이고, 청원은 쥔 것이 없는 쪽이 쥔 쪽에게 요청하는 관계다. 같은 금액을 받더라도 협상으로 받는 것과 청원으로 받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정치적 상태다.

내가 기본소득을 비롯하여 인간 중심 생산 사회에서 AI 생산 사회로의 대전환 필요성을 주장할 때 '전략'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첫째 분배 방식 자체가 협상에서 청원으로 바뀌며 시민들의 지위가 명백하게 낮아질 것이며, 둘째 이에 따라 인간 생산에 있어서의 구체적 대안 세계관을 전략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6.3 청구권만 남은 민주주의

청구권만 남은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첫째, 정치의 의제가 금액으로 수렴한다. 선거에서 다투는 내용이 월 얼마를 주느냐, 언제부터 주느냐, 누구에게 주느냐로 좁아진다. 어떤 기술을 어디에 쓸 것인지,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데이터와 모델을 누가 소유할 것인지 같은 방향의 문제는 의제 논의에서 점차 줄어들게 된다. 이미 결정된 생산 구조를 전제한 채 그 결과물의 배분 방식만을 다투는 정치가 된다.

둘째, 정치 경쟁이 경매에 가까워진다. 방향에서 차별화할 수 없으면 금액과 지급 방식으로만 경쟁한다. 이는 재정 건전성 공격에 취약하고, 경기 하강이 오면 모두가 동시에 후퇴한다. 인플레이션으로 구성된 현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분배를 이야기하는 쪽이 분배 이외의 근거를 갖지 못하면 경기 하강 국면에서 무력해진다.

셋째, 시민의 자기 인식이 바뀐다. 납세자이자 생산자였던 사람이 수급자가 되면, 정치에 대한 관계도 참여에서 신청으로 이동한다. 이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유인의 문제다. 조직해서 얻어낼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조직하지 않는다. 투표는 하지만 결사하지 않는 상태가 굳어지고, 견제 기능이 함께 약해진다.

넷째, 지급의 재량성이 행동을 규율하기 시작한다. 분배가 법적 권리가 아니라 행정의 재량으로 설계되면, 수급 조건은 언제든 붙을 수 있다. 구직 활동 증명, 교육 이수, 특정 행위 금지 같은 조건이 붙는 순간 분배는 자유의 수단이 아니라 통제의 수단이 된다. 이것은 비지배로서의 자유가 훼손되는 경로에 해당한다.

다섯째, 국가의 유인이 달라진다. 재정이 시민의 소득에서 나오지 않고 소수 기업의 이익이나 지대에서 나오면, 국가는 시민에게 설명할 유인이 줄어든다. 산유국에서 관찰된 구조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세금을 걷지 않는 국가는 시민 대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6.4 시민이 빅테크의 이해관계자가 될 때

다섯 가지 중에서도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분배의 재원이 AI 기업의 이익에 직접 연동될 때 생기는 이해 상충이다.

AI 지대를 재원으로 배당을 지급하는 구조를 가정해 보자. 표면적으로는 바람직하다. 생산성의 과실이 모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 시민이 플랫폼 규제나 알고리즘 통제, 데이터 권리 강화를 요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업의 이익이 줄고, 배당도 줄어든다. 시민의 자기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요구가 자기 소득을 깎는 요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가상의 우려가 아니라, 이미 검증된 메커니즘이다. 지대에 재정을 의존하는 국가에서 시민이 체제를 비판할 유인이 약해지는 이유에 해당한다. 분배가 자유를 확장하는 대신 자유에 대한 요구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청구권만 남은 민주주의의 가장 깊은 위험이다.

따라서 재원 설계는 금액 설계보다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 배당의 재원을 특정 산업의 이익에 직접 연동하지 않는 것, 공공 지분이 형성되더라도 그 운용에 대한 통제권을 정치적 대표 기구가 갖는 것, 규제 권한과 재원 구조를 제도적으로 분리해 두는 것이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해당한다.

6.5 역사가 보여주는 두 경로

분배와 결정권의 조합은 역사적으로 반복해서 나타났다.

후기 로마에서 곡물 배급은 점점 제도화되었지만 민회의 실질적 결정권은 같은 기간에 형해화되었다. 배급은 늘고 결정권은 줄어들었던 사례다.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라는 표현은 도덕적 비난으로 주로 쓰이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분배가 결정권의 대체물로 기능했다는 진단에 가깝다.

현대의 지대국가도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석유 수입으로 재정을 채우는 나라들은 시민에게 상당한 급부를 제공하면서도 과세하지 않는다. 대표 없는 분배가 성립하는 것이고, 그 결과 책임성을 요구할 동력이 생기지 못한다.

반면 알래스카의 영구기금과 노르웨이의 국부펀드는 같은 지대를 다루면서도 다른 결과를 낳았다. 차이는 세 가지다. 지대가 유입되기 전에 민주적 제도가 이미 작동하고 있었고, 배당이 재량이 아니라 법적 근거를 가진 권리로 설계되었으며, 기금의 운용이 의회와 공적 감시 아래 놓였다. 분배 자체가 아니라 분배가 놓인 제도적 맥락이 결과를 다르게 만든 것이다.

과세 없는 분배는 책임성을 만들지 않으며, 제도 없는 분배는 실질적 자유(결정권에 대한 지분을 포함한)를 만들기 어렵다.

6.6 통제 수단으로의 분배가 아닌,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분배

분배 자체, 기본소득이나 사회배당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적이고 권리에 근거한 분배는 나쁜 일자리와 불리한 계약을 거절할 수 있게 만들어 비지배로서의 자유를 직접 늘린다. 협상력이 무너지는 시대에 분배는 자유의 필수적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분배의 존재가 아니라 '분배라는 형식만이' 남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노동의 네 기능 중 하나만 남고 나머지 셋이 사라지면, 그 하나는 자유의 수단에서 통제의 수단으로 성격이 바뀐다. 따라서 설계의 과제는 분배를 늘리는 동시에 나머지 세 기능을 의도적으로, 전략적으로 재건하는 것이다.

통제 수단을 막기 위한 방안 구체적 설계 대응하는 자유의 층위
권리성 예산 재량이 아니라 법률 또는 헌법에 근거한 청구권으로 규정 비지배
무조건성 수급 조건과 행위 규율을 붙이지 않음 비지배
재원의 분리와 공적 통제 특정 산업 이익에 직접 연동하지 않고, 기금 운용을 대표 기구의 감시 아래 둠 수단과 비지배
나머지 기능의 병행 재건 상설 숙의 기구,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대한 집단적 권리, 기술 방향에 대한 시민 심의 방향 설정과 자기 형성

6.7 반증 요소

이 장의 논지에도 반론이 있다. 첫째, 현금 이전이 정치 참여를 오히려 늘렸다는 연구들이 있다. 생계가 안정되면 조직과 참여에 쓸 시간과 여력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이 증거가 누적되면 분배받는 시민이 정치적 동력을 잃는다는 전제의 증거 가중치는 낮아질 수 있다.

둘째, 로마의 사례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동시 발생일 수 있다. 공화정의 붕괴에는 군사 지도자의 부상과 속주 확장 등 다른 요인이 많았고, 배급이 결정권의 약화를 일으켰다기보다 양쪽이 같은 원인의 결과일 수 있다. 역사적 유비는 경고로는 유효하지만 증명으로는 약하다고 보여질 수 있다.

셋째, 이 장은 협상력이 정치적 권리의 유일한 토대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민권운동과 여성운동, 환경운동은 생산 현장의 협상력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치와 정체성에서 출발한 동원이 체제의 방향을 바꾼 사례가 분명히 있다. 협상력의 해체가 곧 방향 설정 능력의 소멸은 아니라는 반론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7. 가야 할 길

7.1 전제들의 가중치

지금까지의 논의에 등장한 전제들을 한자리에 모으면 어느 지점이 취약한지가 드러난다. 담론이 믿는 정도와 증거가 지지하는 정도의 격차가 큰 곳, 그리고 이 전제가 무너지는 반증의 상황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제 담론 증거 반증 가능한 상황
부의 극상위 집중이 가속 중이다 85% 60% 최상단 점유율의 정체 또는 하락
AI가 양극화의 주원인이다 75% 40% 노동소득분배율 유지와 저숙련 생산성 수렴
민주주의도 함께 팽창하고 있다 40% 10% 이미 무너짐
자본은 대중의 구매력을 필요로 한다 75% 35% 부유층과 기계 간 거래만으로 순환이 유지될 때
분배받는 시민은 정치적 동력을 잃는다 65% 45% 분배 확대 후에도 참여가 유지된 사례의 누적
AI가 계획의 계산 문제를 해소한다 40% 20% 대규모 경제에서 AI 배분의 효율이 입증될 때

7.2 세 가지 시나리오

앞선 분석에 따라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경로는 '느린 침식'이다. AI의 이득은 소수 기업과 컴퓨팅 자원 보유자에게 집중되고, 고용은 대량 실업보다 신입 채용 축소 같은 방식으로 서서히 재편된다. 민주주의는 형식을 유지한 채 견제 기능이 약해지고, 분배는 권리가 아니라 시혜의 형태로 조금씩 늘어난다.

배제할 수 없는 두 번째 경로는 분배 타협 또는 조세 기반의 붕괴다. 노동소득이 급격히 줄면 소득세와 사회보험처럼 노동에 기대는 재정 구조가 흔들리고, 동시에 수요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자본의 일부가 스스로 분배를 요구할 수 있다. 여기서 분배의 유무 자체보다는 설계의 주체가 결정권을 갖게 된다는 부분이 훨씬 중요하다. 자본이 설계한 분배는 시민을 수혜자로 머무르게 만들고, 민주주의가 설계한 분배는 시민을 권리 보유자로 만든다. 같은 기본소득이라도 정치적 의미는 정반대가 되며, 협상력에 있어서도 크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발생하면 모든 것이 리셋되는 경로다. 하나는 기계 간 거래와 부유층 소비만으로 경제가 순환하면서 다수가 경제적으로 불필요해지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수요 붕괴가 금융위기로 번지며 1930년대처럼 반운동이 폭발하는 방향이다. 후자의 경우 그 반운동이 뉴딜이 될지 파시즘이 될지에 따라 다시 방향성이 갈리게 된다. (현 유럽의 극우 정권 부상과 미국과 베를린의 민주사회주의자 약진 역시 지켜볼 만한 부분이다.)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선택지 또한 현재의 흐름(빅테크와 중국을 위시한 기술패권 다툼)에서 촉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7.3 로마형, 노르웨이형, 아테네형을 만드는 변수

지속해서 '분배'를 '자유'로 이어지는 개념으로 서술하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세 가지 원형을 예시로 들겠다. 후기 로마의 평민은 곡물 배급을 받았지만 결정권은 소수에게 있었다. 노르웨이는 석유라는 지대를 국부펀드로 전환해 분배하면서도 민주주의가 강하게 유지되었는데, 결정적인 차이는 순서였다. 지대가 들어오기 전에 민주적 제도가 이미 잘 자리 잡고 있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노동에서 해방된 여가를 정치에 썼지만, 그 여가는 노예제라는 배제의 대가 위에서 성립했다.

AI가 만들어낼 여가와 지대가 로마형으로 갈지 아테네형으로 갈지를 결정하는 변수는 세 가지다. 분배가 권리인지 시혜인지, 해방된 시간이 공적 참여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게 되는지를 형성하는 인프라에 공적 통제가 있는지다.

7.4 지켜봐야 할 주요 지표

전제가 무너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지표를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 노동소득분배율은 AI가 양극화의 주원인인지와 자본의 구매력 의존 여부를 함께 검증한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신입 고용 추이는 두 번째 시나리오로 진입하는 신호다. AI 기업 매출에서 최종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핵심 전제를 직접 겨냥한다. 극상위 0.001퍼센트의 부 점유율은 집중의 속도를, 자유민주주의 지수와 표현의 자유 지표는 수축의 속도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AI 지대의 분배가 법적 권리로 제도화되는지 기업의 자율 프로그램으로 먼저 자리 잡는지는 로마형과 노르웨이형을 가르는 신호로 해석해볼 수 있다.

8. 지키고자 하는 세 가지 자유

결국 이 모든 분석은 한국인들이 자유를 통해 '주권적 인간', '존엄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정책적 기반을 찾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수단으로서의 자유다. 권리가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행사할 물질적 기반이 없으면 자유는 형식에 그친다. AI가 노동소득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것이 이 층위에 대한 위협이고, 분배를 권리 영역으로 고정하는 것이 그에 대한 대응이다.

둘째는 비지배로서의 자유다. 누군가의 자의적 재량에 매여 있으면 지금 당장 해를 입지 않더라도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협상력의 해체가 이 층위에 대한 위협이고, 집단적 협상 인프라와 재량이 아닌 권리 기반의 제도가 대응이다.

셋째는 자기 형성으로서의 자유다. 무엇을 원할지가 바깥에서 설계되면 선택의 자유가 있어도 그 선택은 자기 것이 아니다. 선호 형성 권력이 이 층위에 대한 위협이고, 알고리즘의 목적함수에 대한 공적 통제와 판단 역량의 교육이 대응이다.

이 세 자유가 모두 갖추어져야 주권적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다만 논리적으로 세 자유는 그 존엄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세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들의 사회가 자동으로 다양하고 존엄한 사회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는 오로지 자신의 고유함을 지키고자 하는 개인들의 집단적, 지속적 정치 행동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Without all three, no one becomes themselves.

9. 비판 대비 변론

마지막으로 이 분석 자체의 전제를 밝혀 둔다. 첫째, 대중 동원 전쟁과 민주주의 확장의 연결은 강한 역사적 패턴이지만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쟁이 남아 있다. 협상력 이론에만 모든 가중치를 주면 문화적 요인과 이념적 요인을 놓치게 된다. 또한 아테네와 로마는 수만에서 수십만 명 규모의 공동체였으므로, 수천만 명의 현대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둘째, 민주주의가 수요 문제를 해결하므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논리는 필요가 해법을 자동으로 만들어낸다는 가정에 기대고 있다. 체제는 필요한 제도를 만들지 못한 채 무너지기도 한다. 셋째, 핵심 전제를 검증할 통계가 아직 없고, 알고리즘이 선호를 형성한다는 명제도 실증 결과가 엇갈린다. 넷째, 협상력의 해체는 수십 년 단위로 진행되는데 정치적 대응은 선거 주기 단위로 이루어지므로, 위기가 체감될 무렵에는 대응 수단이 이미 약해져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최근 나의 가장 큰 우려다.)

따라서 이 글의 결론은 점추정이 아니라 조건부 명제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앞에서 정한 지표들이 갱신될 때마다 가중치를 다시 조정하고, 필요하면 결론을 수정하며, 더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를 구성하여 가야 할 길을 찾아내는 것에 힘써야 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합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전후 복지국가도 위기가 알아서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라, 위기를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을 제도로 만들어 낸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같은 위기 앞에서 어떤 사회는 뉴딜을 선택했고, 어떤 사회는 파시즘을 선택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바꾸는지를 정확히 말하고, 그 변화 앞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분배 금액이 아니라 자유의 언어로 설명하며, 그 설명을 법과 예산으로 바꾸어 내는 일이다.


참고자료: World Inequality Lab, World Inequality Report 2026 / V-Dem Institute, Democracy Report 2026 / Karl Polanyi, 『거대한 전환』(1944) / Wolfgang Streeck, 『시간 벌기』(2013) / Steven Lukes, 『권력: 급진적 관점』(1974) / Philippe Van Parijs,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1995) / Philip Pettit, 『공화주의』(1997) / Walter Scheidel, 『불평등의 역사』(2017) / Amartya Sen, 『자유로서의 발전』(1999) / Hannah Arendt, 『인간의 조건』(1958) / Gilbert Simondon, 개체화 이론 / Daron Acemoglu 외, Democracy Does Cause Growth(2019), The Simple Macroeconomics of AI(2024) / Citigroup, Plutonomy 보고서(2005) / Jeremy Rifkin, 『한계비용 제로 사회』(2014)

노치혜 (2026).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비대칭을 추동하는 AI | AI 시대 정치경제 브리핑 (2026.09.21). 노치혜 Chihye Noh | THINKC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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