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2026년 8월 · 2026년 10월 수치 보강 · 임선영, 『중국 AI 미래 지도』(책만, 2026) 5부 「인프라와 산업: AI가 바꾸는 생산 시스템」을 읽고 정리한 발제 자료를 보고서로 옮긴 글
이 글은 임선영의 『중국 AI 미래 지도』(책만, 2026년 6월) 5부 「인프라와 산업: AI가 바꾸는 생산 시스템」, 특히 13장 「칩 자립과 에너지, 데이터센터, 컴퓨팅파워 인프라의 유기적 진화」를 읽고 만든 발제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 책이 그리는 중국의 AI 인프라 전략을 한국의 상황과 나란히 놓고, 두 나라를 가르는 것이 무엇인지 따져 보는 것이 목적이다. 중국 쪽 서술은 책의 내용에 기대고 있고, 한국 쪽 수치와 제도 변화는 공개 자료로 보강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AI 인프라의 병목은 GPU가 아니라 전력 계통 접속이고, 두 나라의 격차는 돈의 크기가 아니라 결정 권한의 소재에서 나온다.
1. 예산도 칩도 늘었는데, 꽂을 자리가 없다
AI 경쟁의 병목은 모델에서 인프라로 옮겨 가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이 흐름에 맞춰 돈을 쏟아붓고 있다. 2026년 정부 AI 예산은 9.9조 원으로 전년 본예산의 약 3배가 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7년 AI 예산안은 다시 84% 늘어난 9.4조 원이다. 2025년 10월에는 엔비디아가 한국에 최신 GPU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2026년 8월에는 전남 해남에서 국가 AI 컴퓨팅센터가 착공했고, 2028년까지 첨단 AI 반도체 1만 5천 장 규모로 짓는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이 컴퓨팅 자원을 꽂을 자리다. 한국전력 자료를 정리한 CBRE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3월까지 수도권 데이터센터가 신청한 전력계통영향평가 1차 기술검토는 522건, 33,592MW에 이른다. 이 가운데 279건이 첫 단계에서 공급 불가 판정을 받았고, 본심사까지 올라간 것은 24건, 최종적으로 공급 가능 판정을 받은 것은 10건(1,010MW)뿐이다. 신청 건수 대비 1.9%다. 신청 물량에는 중복과 장래 수요가 섞여 있어 이 비율을 그대로 통과 확률로 읽을 수는 없지만, 수도권 전력망이 사실상 포화 상태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유는 전기가 나는 곳과 쓰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역별 전력자급률은 경북과 전남이 200%를 넘는 반면 서울은 12%, 경기는 62%에 그친다. 그런데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송전망을 새로 깔지 않으면 연산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345kV 초고압 송전망 하나를 짓는 데 평균 13년이 걸린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예산과 칩은 병목이 아니고 병목은 접속 슬롯이라는 진단이 과장이 아니다.
이 병목을 풀 수단도 줄었다. 2026년 6월 제정된 AI 데이터센터 특별법(2027년 3월 시행)은 비수도권 AI 데이터센터에 계통영향평가 특례와 인허가 일괄 처리를 주지만, 수요의 대부분이 몰린 수도권은 대상이 아니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던 LNG 발전 전력의 직접구매계약(PPA) 특례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반대로 최종안에서 빠졌고, 재생에너지 PPA만 남았다.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안정적인 전력을 장기로 조달할 수단이 아직 없다는 뜻이다.
2. 중국은 계획이 입지를 먼저 정하고, 한국은 심사가 나중에 거른다
책이 보여 주는 중국의 방식은 이와 정반대다. 중국은 2022년 '동수서산(東數西算)' 사업으로 8개 국가 연산 허브와 10개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먼저 지정했다. 지연 시간에 민감한 업무는 동부 수요지 가까이에 두고, 학습·저장·백업처럼 지연에 덜 민감한 업무는 땅과 전력이 풍부한 서부로 보낸다. 전력이 있는 곳으로 연산이 옮겨 가도록 국토 단위로 미리 배치한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한 부처의 일사불란한 지시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중앙인터넷정보판공실, 공업정보화부, 국가에너지국 네 기관이 공동으로 움직인다. 한국에도 AI 기본법(2026년 1월 시행)에 따른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라는 법정 기구가 있다. 결정 주체가 여럿이라는 점까지는 비슷하다.
갈리는 지점은 그 다음이다. 중국은 네 기관이 문건 한 장을 함께 내고, 그 문건이 거점과 클러스터를 지정한다. 기업은 지정된 거점 안에서 입지를 고른다. 한국은 위원회가 계획을 세우지만 집행 권한은 부처별 법과 제도로 흩어져 있고, 부처 사이를 잇는 수단은 대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업무협약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데이터센터 입지는 기업이 신청하고 한전이 계통을 심사해서 통과 여부를 정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수도권 본심사에 오른 24건 중 14건(58%)이 떨어진 것이 그 결과다. 중국에는 '미리 정하는' 주체가 있고, 한국에는 '나중에 거르는' 절차만 있다.
3. 수요를 설계하는 나라와 시장에 맡기는 나라
수요 쪽에서도 차이가 크다. 2025년 하반기 중국의 여러 지방정부는 자국산 AI 칩을 쓰는 데이터센터에 전기요금을 최대 절반까지 깎아 주는 보조금을 도입했다. 2026년 1월에는 중국 세관이 엔비디아 H200의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자국 칩을 쓰면 이익이 되도록 수요를 정책으로 설계하고, 외산 칩은 통제하는 방식이다.
한국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국가 AI 컴퓨팅센터 공모에는 2030년까지 국산 NPU를 50% 도입하라는 의무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2025년 상반기 두 차례 공모가 모두 응찰자 없이 유찰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유찰 사유로 공공 51% 지분 구조, 사업 실패 시 민간에 책임을 지우는 매수청구권, 그리고 국산 AI 반도체 도입 의무를 꼽았다. 2025년 9월 정부는 민간 지분을 70% 넘게 올리고, 매수청구권과 국산 NPU 의무를 모두 삭제한 뒤에야 삼성SDS 컨소시엄의 단독 응찰을 받을 수 있었다.
중국은 '쓰면 전기를 싸게 준다'는 유인을 줬고, 한국은 '써야 한다'는 부담만 줬다. 상쇄할 유인이 없으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의무를 유지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유지했다면 사업 자체가 무산됐을 것이다. 문제는 의무를 뺀 것이 아니라 유인을 설계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LNG PPA 특례 삭제와 같은 패턴이다. 원인은 하나는 부처 간 충돌, 하나는 시장의 외면으로 다르지만, 대응은 같다. 쟁점 조항을 빼서 속도를 산다.
4. 격차의 실체는 규모가 아니라 결정 권한이다
두 나라를 여섯 가지 축으로 놓고 보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입지는 중국이 국토 단위로 미리 배치하는 반면 한국은 지자체 유치와 수도권 억제를 오가며 사후에 조정한다. 전력 조달은 중국이 국가 전력망 계획에 통합해 관리하는 반면 한국은 장기 조달 수단이 아직 없다. 수요 창출은 중국이 전기요금과 조달 지침으로 설계하는 반면 한국은 시장 수요에 기대고 있다. 컴퓨팅 자원과 조달 주권에서도 중국은 자국 칩 우선과 외산 통제를 택했고, 한국은 공급 물량과 사양이 다른 나라 기업의 배분 결정에 좌우된다.
이 여섯 축에서 국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을 따져 보면, 중국은 모든 축을 결정할 수 있고 한국은 적어도 네 축에서 결정권이 없다. 다만 이 비교는 양쪽 모두 계획치 기준이고, 출처의 성격도 다르며, 평가는 필자의 판단이라는 점을 밝혀 둔다.
중국의 방식이 성공이 보장된 모델인 것도 아니다. 2025년 7월 공개된 중국 정부 연계 조사에서 중국 지능형 연산센터의 평균 가동률은 약 30%로 추산됐다. 지방정부 보조금이 수요를 충분히 따지지 않은 건설을 부추겼다는 경고다. 계획으로 미리 정하는 방식에는 과잉 투자와 유휴 설비라는 대가가 따른다. 그러니 이 비교의 요점은 중국이 잘한다는 것이 아니다. 결정 권한이 분산된 나라에서 인프라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가 우리의 질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 계획으로 정할 수 없다면, 가격·계약·배분으로
그렇다면 한국도 중국처럼 계획 방식으로 가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국은 계획을 못 하는 나라가 아니다. 포항제철도 반도체 산업도 그렇게 만들었다. 다만 지금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지방자치가 있고, 주민 수용성 절차가 있고, 통상 규범이 있고, 무엇보다 자본과 기술이 민간에 있다. 국가 AI 컴퓨팅센터가 두 번 유찰된 것이 그 증거다. 국가가 부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부를 값을 내지 못한 것이다. 중앙이 입지를 지정할 수 없는 체제에서 속도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은 세 가지가 남는다.
첫째, 가격이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은 국가가 땅이나 설비를 소유하지 않고도 입지를 유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광역 신호다. 전력이 남는 지역에 요금을 우대하면 입지가 따라간다. 면제나 인허가 특례와 달리 매년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과 스웨덴 등도 지역별 요금과 송전망 부담금으로 데이터센터의 지방 분산을 유도하고 있다. 한계는 한전의 인가 요금 체계와 요금 차등을 감당할 재무 여력이다.
둘째, 계약이다. 국가가 직접 짓는 대신 장기 구매를 약속해 민간이 짓게 하는 수요 보증(오프테이크) 방식이다. 국가 AI 컴퓨팅센터는 정확히 반대로 설계됐다. 지분과 의무는 국가가 걸고 리스크는 민간에 넘겼고, 그래서 두 번 유찰됐다. 해외에서는 빅테크와 전력 회사가 소형모듈원자로(SMR) 전력을 장기 구매하기로 약정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계는 다년 재정 약정의 구조와 수요 예측의 정확도다.
셋째, 배분이다. 지금 속도를 늦추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동의다. 전기를 대는 지역과 편익을 가져가는 지역이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지연 요인이다. 세수, 요금, 지분 같은 편익을 어떻게 나눌지 설계하는 것이 곧 입지를 확보하는 속도가 된다. 권한이 분산된 체제에서는 보상 설계가 계획을 대신한다. 한계는 보상 재원과 배분 기준이 아직 없다는 점이다.
6. 남는 질문
강력한 계획 주체를 가질 수 없는 나라는 무엇으로 혁신의 속도를 만드는가. 가격인가, 계약인가, 배분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누가 하는가. 국가인가, 지방정부인가, 시민인가. 전기를 대는 지역과 편익을 가져가는 지역이 다를 때, 그 격차는 누가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가.
이 분석은 세 가지 전제 위에 서 있다. AI 전력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 전력은 국내에서 조달한다, 국가가 지으면 산업이 쓴다. 각각의 전제는 고효율 기술 혁신이 수요 증가를 상쇄하거나, 해외 컴퓨팅 자원을 빌려 쓰는 것이 표준이 되거나, 완공 시점에 도입 사양이 이미 낡아 버리면 무너질 수 있다. 이 조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함께 지켜봐야 한다.
참고 자료
- 임선영, 『중국 AI 미래 지도』, 책만, 2026 (5부 「인프라와 산업」)
- 국회예산정책처,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예산 현황과 향후 과제」, 나보포커스 제132호, 2026.1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 AI컴퓨팅 센터 추진 방안(안)」, 2025.9 / 국가 AI 컴퓨팅센터 착공 보도자료, 2026.8.3
- CBRE코리아, 「한국 데이터센터 투자」 보고서, 2026.7 (언론 보도 재인용) / 한국데이터경제신문, 수도권 데이터센터 전력 승인률 심층리포트, 2026.9.17
- 이데일리·서울경제, AIDC 특별법 법사위 통과 및 LNG PPA 특례 제외 보도, 2026.5.6~7
- 연합뉴스, 과기정통부 2027년 예산안 보도, 2026.9.1
- Reuters, China's customs agents told Nvidia's H200 chips are not permitted, 2026.1.14
- 조선일보 영문판·Financial Times, 중국 지방정부의 자국 칩 데이터센터 전기요금 보조 보도, 2025.11
- 넷제로뉴스, 동수서산 8대 허브·10개 클러스터 및 지능형 연산센터 가동률 분석 보도, 202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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